트찰라가 거처를 옮긴지 닷새였다. 놀라우리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구호기구의 모든 일은 나키아와 슈리에게 배당되었고, 슈리는 와칸다에서도 절대 포기한적 없던 자신의 개인 연구까지 접고서 자신이 직접 개발한 인공지능과 기계들과 함께 트찰라의 공백을 메워나갔다.닷새의 시간동안 트찰라는 일절 와칸다에도, 바로 옆건물의 구호기구에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것 참 과학적인 치료군.""그래서 할거야, 말거야?"안정을 찾은 심전도와 슈리의 설명에 집중하던 에릭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트찰라가 치료를 위해 침대에 누웠을때 에릭은 자신도 모르게 신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에게 내밀어진 한권의 책을 받고서 신에게 욕설을 내뱉었다."주리의 유품이야."삼촌의-. 입술안에서 맴돌은 자신의 희생자에...
「와칸다의 대변인인 에릭 스티븐슨의 인터뷰는- .....오늘 진행된 2차 비브라늄 무역에 결과에 상당한- .... 호전적인 협상가라 불리는 스티븐슨은 벌써부터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수입과 수출이-.... 유래없는 일로서 각국 정상은-……스티븐슨의 의견을 부당히-……와칸다로 이민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증가... 한편 미국 대통령은...」기실 장황히 설명...
"주리!""여기 계셨습니까, 왕자님. 농구는 홀로그램과 같이 하셔도 좋을텐데요.""슈리가 홀로그램에 손을 댔는데 종종 공을 발로 차더군. 손만 사용한다니 비효율적인 운동이라나.""남동생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신적 없으십니까?""제사장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할때가 있어. 그것도 국경 바깥의 이야기인가? 꼭 남동생일 필요가 있어?" 와칸다의 미래를 짊어...
"로스 요원을 만났다면서.""그가 그나마 와칸다의 사정을 아는 놈들 중에서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더 높은 지위면 좋겠지만 단속할 수 있는 위치는 돼. 쓸모가 있을거야."에릭은 트찰라의 앞에 정갈히 놓인 그릇을 보았다. 초록색의 멀건 죽처럼 생긴 병원식이다. 음식에 특별한 기호없이 살아온 에릭이었지만 그리 유쾌해 보이는 식사는 아니었다. 냉정히 판단하건데...
"전염병일 수 있어. 그러니-.""창든 여자들이 즐비한 복도보다 좁은 비브라늄 관짝이 낫지 않겠어?"에릭은 트찰라의 권유에도 무시하지 않고 암호를 눌렀다. 문이 열리고 이내 실내는 방문객을 위해 조금 더 밝아졌다. 트찰라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방은 깨끗하고 단정했다. 책 몇권이 무료함을 달래주는 것의 전부인듯 싶었다. 왕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책의 모서리를...
“정신이 들어요?” 청년은 환자의 입모양을 읽고서 컵을 준비했다. 그가 물이 아닌 술을 원했다 할지라도 상관없다.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게 순종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었으니까. 독을 줬어도 먹을 사람이었다. 모차르트는 성씨를 물려준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기르는 개를 건네주는 태도의 아버지. 순종과 서운함의 눈빛을 떼지 못하던 사냥개. 그 개는 지...
‘너는 흰 옷을 입고 죽을 것이다.’ 노파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유언임을 알면서도 그리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에 무엇으로 답해야 할까. 살인자는 죽은 자를 위한 성호를 그으며 품속에 동전이 몇 개 있는지를 생각했다. 노잣돈? 예언 값? 죽은 자를 위한 대우따위. 그저 변태적인 행동일 뿐이다. 자신을 용의선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다. 눈위에 얹어주는 불쾌...
“연주가 급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시다시피, 살리에리. 많은 분이 저의 인성에 또다시 결격사유를 느낄듯합니다. 당신께도 무척 죄송함을 느낍니다.” “간병인을 불러주겠습니다.” “음? 저는 바쁘신 궁정악장님께서 친히 병간호를 자처하여 오신 줄 알았는데요.” 열은 실언을 틔운다.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말. 살리에리에게 병을 옮길 수 있다. 그것은 ...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성가대의 인사를 마치고서 소년은 정신없이 돌계단을 올라섰다. 눈을 감고서도 오르내릴 수 있노라 자신했던 검은 돌계단을 두 차례 미끄러진다. 소년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1750년생이래. 맙소사. 완전 천생연분이야. 그때 나는 16살이었어. 지금과 똑같지.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자신도 성가대를 했대! 애착을 가지고...
나무이길 꿈꾸는 꽃은 구석의 벽에 서 있다. 자신의 개화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음악의 청자로서 넓은 자리는 필요 없었다. 음악은 오늘 처음 듣는 곡으로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저 남자가 발표한 소나타였다. 고고히 쌓아 올린 꽃의 교양은 제대로 모르는 곡과 연주자에 대한 갈채를 보내고 싶지 않다는 투정을 부렸지만, 마지막 건반이 곡의 끝을 ...
“살리ㅇ ……아니잖아.” 그는 놀랍게도 매번 알아차렸다. 여행가에게는 오랜 시간, 그리고 모차르트에게 있어서는 단 몇 분만일 마주침이었다. 신은 어째서 이렇게 빨리 조우를 허락하셨을까. 잔인한 선물이다. 살아있는 남자의 얼굴은 뛰어오느라 조금 상기되어 있었고, 끝이 납처럼 바랜 금발머리칼이 노을에 반사되어 적갈색으로 보였다. 어째서 여행의 시작은 붉음의 전...
물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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